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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이영순 (wisdomwell) 등록일/조회수 2010-03-14 16:44 / 255
제 목 법정스님의 "무소유", 그리고 은혜
첨부파일 전남 송광사04.jpg
전남 송광사05a.jpg
내 용






법정 스님이 2010년 3월 11일 입적하셨다.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TV로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웎졌다. 그만큼 스님의 아름다운 인격에서 스며나온 그분의 글들을 통해 내 마음이 정화되는 귀한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법정스님을 뵈온 것은, 1970년대 후반 샘터사에서 일할 때였다. 당시 송광사 불일암에 계시며, 샘터 잡지에 '산방한담'이라는 컬럼을 집필하셨는데, 가끔씩은 서울에 올라와 직접 샘터사를 찾으셨던 때문이었다. 합장하며 인사하시는 그분의 얼굴은 여뉘 사람들과는 달랐다. 얼굴에 전혀 기름기(세속의 욕심)가 없으시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쌩떽쥐뻬리의 "어린왕자"처럼... 그리고 빛나고 예리한 눈빛... 원고지를 메꾸어간 그분의 정갈한 글씨체가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큰 스님을 추억하며, 2001년 "무소유"와 "오두막 편지"를 읽고 썼던 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그리고 은혜


지난 1월 법정 스님의 수필집 "오두막 편지"를 읽었습니다. 글이 너무 좋아서 그의 또 다른 수필집 "무소유"를 구입하여 여러 날 아껴 가며 읽었습니다.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해주는 글, 깨끗이 비로 쓴 산사(山寺)의 정갈한 뜰을 연상시키는 귀한 글이었습니다. 깊은 묵상이 빚어낸 맑은 생각들이 우리 모국어가 지닌 아름다움과 얽혀져 더욱 빛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글을 읽으면, 때묻은 내 마음이 샘물로 씻기움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 자꾸 다음 글을 읽고 싶어집니다.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고여 있는 말씀을 비로소 듣는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미처 편집되지 않은 성서다. 우리들이 성서를 읽는 본질적인 의미는 아직 활자화되어 있지 않은 그 말씀까지도 능히 알아듣고 그와 같이 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언뜻 보기엔 어느 신학자나 목사의 글 같지만, 사실 법정스님이 쓴 "침묵의 의미"라는 수필의 한 구절입니다.

"나그네 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자신의 속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이 단순한 취미일 수만은 없다.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 [법정] "나그네 길에서"

그의 글은 늘 "나 자신의 속 얼굴"을 돌아보게 합니다. 삶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글을 사랑하며 읽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언뜻언뜻 묻어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나는 감지(感知)합니다.
철저하게 혼자 가는 수도의 길... 혼자 쌓아가는 정진의 삶... 저 멀리 반짝이는 진리의 별을 향해 하나하나 정성껏 쌓아가는 탑, 언젠가 진리의 별과 만나지리라 소망하면서, 집착에서의 완전한 해탈의 경지를 추구하면서 쌓아가는 수행의 탑. 수도자의 길은 철저하게 적막하고 고독합니다. 법정 스님은 "미리 쓰는 유서"라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 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 [법정] 미리 쓰는 유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은 바로 이렇게 홀로 걸어가는, 철저하게 고독한 수행자의 모습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독교나 불교가 추구하는 삶의 내용--세속적인 소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비와 사랑으로 사는 삶--은 같아도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봅니다.

기독교는 역설입니다. "나의 거룩의 탑", "나의 선행의 탑", "나의 수행의 탑"을 쌓아 올리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 탑을 철저하게 무너트릴 것을 요청합니다. 끊임없는 수행으로 나의 의(義)를 쌓아가려는 그 노력을 포기할 때, 내가 나의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죄성(罪性)의 노예임을 고백할 때, 결국 나로서는 아무 선(善)도 쌓을 수 없다는 자각으로 절망할 때, 진리를 향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갑자기 그 추구해 오던 진리의 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만나지는 것이 기독교의 은혜입니다.

별을 향해 계속 정진해 가는 것이 타종교의 수행승의 삶이라면, 별이 돌연, 내게로 내려와 절망한 내 가슴에 박히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입니다. 내 편에서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거저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내가 수행함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며 가는 길은 나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 끝날 까지" 동행하는 길입니다. 나의 힘으로 사랑하고, 나의 힘으로 선행을 베푸는 삶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성화의 삶,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길에서는 결코 적막감이 묻어나지 않습니다.

프로이드가 기독교를 유아기적 발상으로 보고, 연약한 자들의 종교라고 비아냥거렸다지만, 나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을 택한 것을, 아니 주님 은혜에 사로잡히게 된 것을 무엇보다도 다행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은혜(Grace). 기독교를 타종교와 구별짓는 단어를 하나만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단연코 은혜, 은혜, 은혜입니다.

새벽에 쓰는 편지 제 8신 (2001년 3월) 에 쓴 끌.

글, 사진: 이 영순 사진은 전남 송광사 2004년 5월 촬영.

**맑고 정갈한 글을 통해 자연과의 교감을 갖게 해주시고 나 자신을 성찰케 해주셨던, "어린 왕자"를 좋아하셨던 법정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제 블로그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http://blog.daum.net/wisdom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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